[2025 Recap] Day 5: 축제는 끝났다, 계산서를 내밀 시간 (9월-10월)
들어가는 글
지난 [Day 4]에서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생성형 미디어의 충격과 딥페이크 논란을 다뤘다. 기술적 진보는 놀라웠지만, 가을의 문턱인 9월에 접어들자 시장의 분위기는 차갑게 식어갔다.
투자자들과 기업 경영진들은 이제 “와, 신기하다!”라고 감탄하는 단계를 넘어섰다. 그들은 계산기를 두드리며 “그래서 이걸로 언제, 얼마나 벌 수 있는데?”라고 묻기 시작했다. 2025년 9월과 10월은 AI 업계에 찾아온 ‘옥석 가리기(Shakeout)’의 시즌이었다.
9월: ‘AI 거품론’의 재점화와 구독 피로감
2023년부터 이어진 AI 투자 광풍에 대한 피로감이 9월을 기점으로 폭발했다.
치솟는 비용, 정체된 수익
수천억 원을 들여 모델을 학습시키고 GPU를 구매했지만, 정작 소비자들은 월 20달러의 구독료도 부담스러워했다. 챗GPT 이후 우후죽순 생겨난 ‘Wrapper(단순 포장)’ 서비스들—대형 모델 API에 UI만 입힌 서비스들—이 줄줄이 폐업하거나 인수합병(M&A) 매물로 나왔다.
사용자들은 이미 너무 많은 구독 서비스(OTT, 음악, 뉴스 등)에 지쳐 있었고, ‘단순히 글 좀 써주고 그림 좀 그려주는’ 기능에 지갑을 열지 않았다. B2C(기업 대 소비자) AI 시장의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Killer App(킬러 앱)’의 부재가 뼈아픈 현실로 다가왔다.
10월: 버티컬 AI(Vertical AI)의 부상
범용 모델(General Purpose Model)로 승부하던 스타트업들이 무너지는 사이, 특정 산업에 깊숙이 파고든 ‘버티컬 AI’ 기업들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모르는 게 많은 박사보다, 한 분야의 장인이 낫다”
법률, 의료, 제조, 금융 등 전문 지식이 필요한 영역에서 AI 도입이 가속화되었다.
- 법률: 판례 분석과 계약서 초안 작성에 특화된 AI가 로펌의 필수 도구로 자리 잡았다.
- 의료: 영상 판독을 넘어, 신약 개발 시뮬레이션에 AI가 투입되어 임상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켰다.
- 제조: 공장 설비의 고장을 예측하고 공정 최적화 코드를 짜는 AI가 스마트 팩토리의 표준이 되었다.
이들 버티컬 AI 기업들은 환각(Hallucination) 현상을 제로에 가깝게 줄이기 위해, 범용 데이터가 아닌 ‘폐쇄형 고품질 데이터(Proprietary Data)’ 학습에 집중했다. “데이터가 곧 해자(Moat)”라는 격언이 증명된 셈이다.
엔터프라이즈 시장의 변화: RAG의 고도화
기업 내부(On-premise) 시장에서도 변화가 감지되었다. 10월, 주요 클라우드 벤더(AWS, Azure, Google Cloud)들은 기업 고객을 위해 RAG(검색 증강 생성) 파이프라인을 구축해 주는 턴키(Turn-key) 솔루션을 경쟁적으로 출시했다.
기업들은 이제 외부의 똑똑한 AI 모델을 빌려 쓰되, 지식(Knowledge)은 철저히 사내 문서함에서만 가져오도록 강제했다. 보안 이슈로 AI 도입을 꺼리던 보수적인 금융권과 공공기관들도 이 방식(Secure RAG)을 통해 빗장을 열기 시작했다.
기술적 회고: 효율성(Efficiency)이 곧 경쟁력
9월과 10월의 기술 트렌드는 ‘모델 경량화’와 ‘추론 비용 절감’이었다.
성능을 1% 올리기 위해 파라미터를 2배 늘리는 무식한 방법은 더 이상 환영받지 못했다. 대신, 증류(Distillation), 양자화(Quantization), 스파스(Sparse) 모델링 등 적은 자원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내는 기술을 가진 엔지니어들이 몸값을 올렸다.
요약
2025년의 가을은 잔혹했지만 건강했다. 실체 없는 기대감만으로 부풀려진 거품이 꺼지고,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고 돈을 벌어다 주는’ AI 기술만이 살아남았다. B2C 시장의 환상은 깨졌지만, B2B와 버티컬 시장에서는 단단한 뿌리가 내리고 있었다.
이제 11월과 12월, 한 해를 마무리하며 다가올 2026년을 준비하는 ‘차세대 폼팩터’와 ‘AGI를 향한 마지막 퍼즐’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다.